동문오피니언
사주가 같다고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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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가 같다고 하여도...
쌍둥이는 서로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쌍둥이 문제는 사주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사주가 같은 쌍둥이도 일생이 똑같지 않은데 사주라는게 맞겠는냐는 것이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2 개로 나뉘어지는 태어난 시를 더 세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또 처음 태어난 아기는 사주를 그대로 정하지만, 나중에 태어나는 아기는 사주 정하는 방법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이나, 해결을 위한 주장 모두가 "사주가 같으면 일생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주가 같다고 해도, 바꿔 말해서 타고난 운명이 같다고 해도 일평생의 삶의 모습이 같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방향과 흐름을 알아낼 수는 있지만 미래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결과를 알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해질 미래의 결과는 정해진 운명의 흐름을 벗어 나지는 못합니다.
이것을 "운명" 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산다는 것 자체가 재미없겠지요.
"프랙털(fractal)이론"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무질서하고 불규칙해 보이는 자연적 현상속에 숨어있는 일정한 법칙을 이야기하는 이론입니다.
어린시절 눈송이를 확대경으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눈송이들은 참으로 다양한 여러가지 모습입니다.
그러나 모든 눈송이는 예외없이 육각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많은 눈송이 중에 비슷한 눈송이는 있지만 똑같은 눈송이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각각의 눈송이의 서로 다른 모양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우연이라는 것도 결국은 육각형이라는 필연의 형태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도 더 크게 생각하면 자연적인 현상의 하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만이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쌍둥이의 삶을 눈송이에 비유한다면, 육각형이라는 것은 정해진 운명입니다.
운명이 있다면 그 운명 또한 개척하는 것 역시 우리 모두의 몫일 것입니다.
운명아 길을 비켜라 ...
고정화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 그것을 자유라고 ...
그런데 그 자유도 늘 책임이 따른답니다.
민주주의는 자기책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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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식님의 댓글
삶, 운명, 개척, 그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