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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종(53회) '인천학생 6·25참전관' 확장 이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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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 9. 1)
'인천학생 6·25참전관' 확장 이전
학도병 역사교육장 새둥지 … "'나라사랑' 되새겼으면"
중구 용동큰우물거리 입구 용동 187번지로 옮겨
4층 건물 1·2층 참전관 3·4층 '이규원치과' 운영
사진·책 등 기록물 전시 … 신임 관장에 이근표씨
'인천학생 6·25참전관'(관장 이근표)이 최근 확장 이전해 문을 열었다. 인천시 중구 '용동큰우물거리' 입구 용동 187번지로 이전한 인천학생 6·25참전관은 4층짜리 건물로 1, 2층은 참전관으로 3, 4층은 '이규원 치과'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학생 6·25참전관' 초대 관장은 이경종 옹으로 그는 1995~2005년까지 관장직을 지냈으며, 2006년부터 지난 8월까지는 이규원 치과 원장이 관장을 역임했다. 이번에 확장 이전하면서 이규원치과 부원장인 이근표씨가 신임 관장을 맡게 됐다. 이들은 3대에 걸친 부자지간이기도 하다.
1, 2층 전시장에선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군복과 총을 든 앳된 학생들의 사진 수백 점을 만날 수 있다. 다름아닌 초대 관장 이경종 옹이 90년대 초반부터 9년간 만난 인천학생의용대원 수백 명의 사진이다.
▲ 6·25 전쟁에 참전했던 당시 학생들의 사진.
이 옹이 사진을 수집할 당시 학도의용대 연대장 이계송씨를 비롯해, 부연대장 정대연, 국방부 청훈국인천파견대장 임희철 대위 등은 자신이 소중히 간진하던 빛바랜 사진을 내놓았고, 당시 상황을 증언해 녹취를 해 놓기도 했다. 이들 사진 아래엔 사진설명이 적혀 있는데 이 옹이 일일이 수기로 적은 것들이다.
이들 사진들은 지난 2000년 6월 인천시청에서 첫 사진전을 여는 등 몇 차례의 전시회 때 선을 보인 바 있다.
참전관의 다른 한 켠엔 두툼한 책들이 꽂혀 있는데 인천학생들의 참전기록을 담은 <인천학생 6·25참전사>이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외롭게 하늘나라로 간 내 동생 윤수(6·25 참전 전사 인천학생)의 넋이 나마 편안하게 잠들기를 빌 뿐이며 동생의 행적을 글로나마 남기게 해주어 무겁던 내 마음이 다소나마 덜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끝으로 인천학생들의 6·25참전 역사편찬 사업이 잘 마무리 지기를 빈다'(<인천학생 6·25참전사> 25쪽, 김탁수 인천학도의용대 군악대 소속 대원, 1931년 9월23일 인천시 중구 용동 출생)
▲ '인천학생 6·25참전관'이 최근 용동 큰우물거리 입구로 이전 확장했다. 이 곳에선 6·25전쟁 당시 인천학생들의 참전 상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시실에 옛날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이 책들은 이경종 초대관장과 이규원 2대 관장이 지난 96년부터 인천학도병의 역사를 찾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시작,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 어렵게 펴 낸 결과물들이다. 인천학생 6·25참전사는 그가 만난 인천 출신 학도병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자 처절한 증언이다.
한 권 당 530쪽으로 이뤄진 이 책엔 6·25 참전 인천학생들의 남기고 싶은 말, 전투기록, 당시 사진 등을 싣고 있다. 현재 4권까지 나와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옹이 <인천학생 6·25참전사> 편찬사업을 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란 어려운 시기, 어린 나이에 나라를 지키겠다며 목숨을 바친 학생들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옹이 말하는 인천학생들의 애국심과 활약은 남달랐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천지역 학생들은 바로 다음날 전인천학생의용대를 자발적으로 만든다. 이들은 인천이 함락되기 전까지 인천에서 치안유지활동을 벌였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을 안내하기도 했고, 학생 선도 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 참전관 3·4층은 이규원치과로 운영된다.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다.
이후 1950년 12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이들은 학도의용군으로 이름을 바꿔 부산으로 향했고, 이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일부는 해병대원이 되고, 일부는 보병이나 통신대원이 됐다. 그렇게 군인이 된 14~18살 소년 3000여명 중 200여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수많은 학생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참전관을 처음 만든 이경종 옹 역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이던 50년 12월28일 고향의 형들을 따라 부산까지 걸어서 자원입대한 학도병 출신이다.
중3이었던 그는 너무 어려 처음 입대가 불허됐지만, 우여곡절끝에 군번을 부여받아 4년 간 전쟁터에서 인천과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이근표 관장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학생 신분으로 전장터에 뛰어든 할아버님과 그 당시 부모세대들의 애국심을 높이 기리고 배워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아버님의 뜻을 잘 따라 관장직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차도 드시고 관람을 하면서 역사공부도 하고 휴식도 취하시면서 나라 사랑의 마음을 새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5년 09월 01일 화요일
/글·사진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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