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김원봉’ 전기 쓴 인천출신 이원규(65회) 소설가 (퍼온글)
본문
퍼온곳 : 경인일보(15. 8.31)
‘김원봉’ 전기 쓴 인천출신 이원규 소설가
영화로 부활한 의열단
그들의 희생 잊지말길
▲ ‘약산 김원봉’ 저자 소설가 이원규. /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 영화 ‘암살’ 히트 재조명
월북탓 잊혀진 인물… 10년전 책 쓰며 인연맺어
“나석주 등 실존 인물 더 담았다면…” 아쉬움도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1898~1958)이 영화 ‘암살’의 흥행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주말 관객 1천200만명을 돌파한 이 영화 한 편으로 김원봉과 항일단체 의열단은 전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이 때문인지 인천의 대표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이원규(68)씨가 꼭 10년 전에 김원봉과 의열단 투쟁을 조명한 ‘약산 김원봉’(실천문학사, 2005년)을 펴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김원봉은 중요 항일 투사였지만 ‘월북’한 탓에 남한에서는 철저히 지워지고 잊혀진 인물이 되었다. 그런 김원봉이 영화로 부활할 것이라고 마치 예견이라도 하듯이 발품을 팔아 어렵디어렵게 평전을 썼다.
“아들이랑 극장에서 암살을 봤어요. 남북 역사에서 외면받은 김원봉이 재조명받는 것은 잘된 일 같아요.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원규씨는 “남쪽뿐 아니라 북한에서 먹물 좀 먹었다는 사람(탈북자)들도 그를 잘 모르더라”며 “매스미디어 영상 매체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철저한 고증과 현지 조사 경험을 토대로 ‘약산 김원봉’을 썼다. 중국 만주,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1994년에는 조선의용대 활동 근거지를 찾아 중국 타이항산과 연안을 여행했다. 해외 답사와 집필을 위해 교사 생활까지 그만뒀다.
이원규씨는 “90년대 초중반에 한 출판사 지원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어려웠던 시절에 중국과 러시아를 20번 정도는 갔을 것”이라며 “의열단과 조선의용대 현장을 여러 번 밟아 봤기 때문에 약산 김원봉을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원봉 전기(傳記)를 시작으로 항일투사 ‘김산 평전’(실천문학사, 2007년), 인천이 낳은 진보 정치인 ‘조봉암 평전’(한길사, 2013년)을 내놓았다.
“소설가가 전기나 평전을 쓰는 경우는 드물지요. 15년 전인가, 한 사업가가 우리 위인 102명의 전기를 쓰자고 소설가협회에 제안했어요. 그때 제가 맡은 인물이 김원봉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프로젝트는 무산됐어요. 그래서 ‘약산 김원봉’이 실천문학사 인물 평전 시리즈로 나온 겁니다.”
수많은 위인 중 그가 김원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원규씨는 “약산은 매혹적이다. 얼음처럼 냉정하고 과감성이 있다”며 “절대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김원봉)가 없었더라면 의열단이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원봉을 쓰면서 독립운동사와 공산주의운동사를 공부했다”며 “그 덕에 김산과 조봉암 평전을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암살은 1933년 상하이와 경성에서 일어난 친일파 암살작전을 다루고 있다. 당시 김원봉 나이가 36세인데, 의열단의 암살 활동은 그가 20대일 때 활발했다.
이원규씨는 “영화 암살이 지나치게 상상력 쪽으로 갔다. 시간과 장소 등 기본적인 것은 지켜져야 했다”며 “의열단원 박재혁이나 나석주 등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감동이 더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원규씨는 “김원봉 등 의열단의 희생이 독립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목동훈 mok@kyeongin.com
2015년 08월 31일 월요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