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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택(56회)이사장/새얼문화재단 창립 40주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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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인천일보(15.10.19)
[새얼문화재단 창립 40주년] 인천 '깨어있는 정신'이 되다
1975년 10월 장학회로 첫발…1983년 8월 문화재단으로 조직개편
국악의 밤·아침대화 강연·황해문화 발간 등 사업 추진 …
지역 '문화·예술 발전' 이끌어
새얼문화재단의 발걸음은 '황소걸음'이다. 우직하게 '한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황소처럼, 새얼의 걸음은 느려 보이지만 중후하며 쉬지 않는다. 그 황소걸음으로 40년을 걸어왔다. 새얼문화재단이 오는 23일 창립 40주년을 맞는다.
새얼문화재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입을 다물지 못 한다. 때로는 찬사의 눈길로, 때로는 경외의 마음으로 새얼을 바라본다.
김학준(아시아기자협회 이사장) 선생은 새얼의 활동을 "소리 없는 혁명이자 도도한 장강의 형세"라고 말한다.
인천 정치계 원로인 심정구 선생(전 국회의원, 주식회사 선광 부회장)은 "우리에게 내일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훌륭한 나침반"이라고 평했으며 청계(淸溪) 이기인(대한노인회 인천지회 전 회장) 선생은 "소금이 시간의 결정체이듯 문화도 시간의 결정체인데, 새얼문화재단이 꽃피운 인천의 문화도 그와 같다"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이수영(한국경영자총협회 전 회장) 선생은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인천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정치·경제·문화 등 다방면에서 인천시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라고 확신한다.
새얼문화재단의 오늘을 만든 건 지용택 이사장을 중심으로 모든 직원이 혼연일체가 돼 쌓아온 선명한 철학과 세월이었다. 권력의 부침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본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채 산을 옮기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온 지난 세월이 새얼문화재단의 오늘을 세운 것이다. 새얼은 이제 우리 인천의 자랑이자 인천을 대표한 브랜드이며, 인천의 깨어있는 정신이 됐다.
#격동의 1975년, 인천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75년부터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공휴일이 됐다. 그 해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당시 인천시에 있던 자동차는 관용차 472대, 자가용 1541대, 영업용 4911대 등 모두 6924대였다.
그 해 타이완의 장제스 총통과 장준하 선생, 인천 언론인 고일 선생이 세상을 떠났고 월남이 패망하며 베트남이 통일된다. 5월에 긴급조치 9호가 발표됐고 7월 대서양 상공에서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과 소련의 소유즈 우주선이 도킹 실험에 성공했다. 9월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완공됐다.
다사다난했던 1975년. 그 해 가을 인천시민들에게 특별한 역사가 시작됐다. 바로 '새얼문화재단'의 탄생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있고, 흔히 한 세대를 30년이라고 한다. 사람 나이 마흔을 공자는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불혹(不惑)'이라 했고, 소설가 조셉 콘래드는 "인생 40년이면 황망한 바다를 항해하던 선원 앞에 멀리 나타나는 지평선 같이 앞날이 보이는 것"이라고도 했다.
새얼문화재단 40년의 의미는 인천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오는 23일 창립40주년을 맞는 인천의 브랜드 '새얼문화재단'을 돌아본다.
#'우공이산'과 '해불양수', 인천의 정신이 되다
1975년 10월23일 새얼문화재단은 근로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회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당시만 하더라도 자동차 보험 제도가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운수노동자가 차량 운행 중 사고를 일으키면 수감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가장이라면 그 자녀들은 학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1975년부터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새얼문화재단의 장학금 수혜를 입은 학생은 모두 5792명, 지급된 장학금만 25억1700여만원에 이른다. 새얼문화재단의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 '새얼회'다. 이들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재단과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
새얼문화재단이 장학재단에서 문화재단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한 때는 1983년 8월22일이다. 이때부터 새얼은 인천 지역사회의 문화와 예술 발전을 위한 여러 사업들을 본격 추진한다.
흔히 새얼의 정신을 말할 때, 첫 번째가 '우공이산(愚公移山)'이고, 두 번째가 '해불양수(海不讓水)'이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愚公移山)"는 고사성어는 새얼문화재단의 사업방식을 의미한다. 새얼문화재단은 한 번 시작한 사업은 절대 중도에서 포기하는 법이 없다. 새얼문화재단이 그간 해온 사업 대부분이 현재까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어서, 재단 창립 40주년을 맞은 이즈음에는 재단의 행사 대부분이 20주년, 30주년을 넘기고 있다.
예를 들어 해마다 가을에 개최하는 '가곡과 아리아의 밤'은 지난 2013년에 30주년을 넘겼다. 1년에 한 번씩 전국의 역사유적을 찾아가는 '역사기행' 역시 올해 30주년을 치렀고, 전국의 청소년 문사들이 인천에 모여 문예실력을 겨루는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도 3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열리는 '새얼아침대화'는 내년(2016년) 5월이면 360회로 30주년을 맞이한다. 계절의 전령사로 지식담론의 최전선을 감당하고 있는 계간 <황해문화> 역시 지령 89호까지 발행됐으며 단 한 차례의 결호도 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여 거대한 대양을 이룬다"는 해불양수는 개항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인천의 정신이자,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시민들을 하나로 묶어 인천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깨어있는 시민의 공동체로 만들고자 하는 새얼의 바람이 녹아든 표어이다.
'바다(항구)'와 '하늘(공항)'로 전 세계와 연결된 글로벌 시대의 열린 도시 인천을 상징하는 표어로 손색이 없는 말이다. 오늘날엔 관공서를 비롯해 민간단체들까지 인천을 상징하는 말로 즐겨 사용하고 있지만, 이 말의 원뿌리는 새얼문화재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새얼이 그간 인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얼마나 중추적 역할을 해왔는지 잘 말해준다.
# 새얼문화재단이 살찌운 인천의 문화와 예술
새얼문화재단의 주요 사업들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예술공연사업(Art & Perfomance)으로 해마다 봄에는 국악을 전통과 현대의 정신으로 계승한 '국악의 밤'을 23년째 개최해오고 있다. 가야금의 황병기 명인, 전통무용을 혁신한 춤꾼 김매자를 비롯해 비보이(B-boy)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는 국악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
가을엔 올해로 32회를 맞이하고 있는 '가곡과 아리아의 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국내 최고의 성악가라면 누구나 한 번은 반드시 거치는 정통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새얼문화재단은 중앙과 지역의 예술인들이 한 무대에서 서로의 실력을 견줄 수 있도록 하여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무대를 기획해오고 있다.
두 번째는 새얼의 모태가 되었던 장학·교육사업(Scholarship & Contest)으로 현재까지 꾸준이 이어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놀라운 것은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새얼전국학생·어머니백일장'이다. 1986년에 시작한 새얼백일장은 지금까지 1만20개 학교에서 11만5427명의 학생, 1만3645명의 어머니가 참가한 전국 최대 규모의 백일장으로 우뚝 섰다.
30년 동안 전국의 청소년 문사들을 발굴하는 행사로서 어느덧 새얼백일장 출신 문인들(시인 이용임, 유병록, 소설가 김금희, 안보윤 등)이 대한민국 문단의 중견 작가,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인천문예교육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새얼문예창작교실'은 소설가 양진채, 김숙, 유시연, 시인 최운영, 김정희, 김선향 등 날카로운 재기와 시대정신을 겸비한 신예 작가와 시인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 번째는 지역 화합과 발전을 위한 지역소통사업(Local Community)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내년(2016년) 5월로 30주년을 맞는 '아침대화(Morning Forum)'이다. 새얼아침대화는 '시대의 아침을 여는 열린 대화의 장'이라는 모토에 걸맞게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론적 흐름과 현실 사이에 가교를 놓는 열린 대화의 장으로서 진보와 보수가 한 자리에서 만나는 전국적으로 이름 높은 조찬 강연 행사이다.
새얼문화재단은 고함을 치는 대신 조용하고 묵직한 발걸음으로 인천의 지역현안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굴업도 핵폐기장 문제를 비롯해 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장 문제를 이끌어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인천 발전을 위한 국내외 롤모델 지역을 시민들과 함께 찾아가 시찰하는 '인천발전을 위한 시민대장정' 활동을 이끌어오기도 했다.
새얼을 전국적으로 각인시키며 지식인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 우리나라의 대표적 계간지 <황해문화>를 발간하고 있는 곳도 바로 새얼문화재단이다. 지난 1992년 창간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1993년 12월1일 '지구시민사회를 꿈꾸려면 지역에서 출발하라!'는 모토로 출발한 <황해문화>는 매 계절마다 발간되는 종합인문교양지다. 공허한 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담론의 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 이론을 창안하고자 하는 잡지로 정평이 나 있다.
네 번째는 역사·기념사업(Memorial & Historical Work)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인천의 역사가 유실되지 않도록 돌보고 살피며 인천의 정신이 후손에게 올바르게 전해지도록 하는 기념사업 말이다.
우리 고고미술사학의 태두이자 진정한 인천인이었던 우현 고유섭 선생 동상을 지난 1992년에 인천시립박물관에 건립해 인천시에 헌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지난 2000년에는 인천 시민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인천종합문예회관 앞 공원에 '그리운 금강산' 노래비를 건립했다.
앞으로는 미술평론가 석남 이경성과 죽산 조봉암 선생을 기리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로 30년을 맞이한 '역사기행'은 인천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역사 현장을 답사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다섯 번째는 문화지원사업(Supporting Work)이다. 새얼문화재단은 시민들의 후원으로 조성한 문화재원을 바탕으로 지역의 소규모 문화단체 및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문화적 메세나이자 문화자원의 연결자(Hub of Cultural Network)로 기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새얼문화재단은 재단기금 55억9100여만원, 후원회원 1만1971명에 이르고 있다.
/김진국 기자 freebird@incheonilbo.com.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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