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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성(65회) 인천시립박물관장/애장도서(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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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5.12.21)
인천 곳곳 숨겨진 음식문화 사람냄새 나는 인생사 담다
27.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
"나에게 가장 진실한 책은 ‘사람’입니다. 한 권의 책이 가져다주는 감동도 크겠지만, 사람에게서 얻는 것을 넘어서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책도 사람이 썼고, 사람이 사는 우리네 인생사가 모두 ‘책 속에 담겨 있다’는 한결같은 믿음이다.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가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명사가 함께하는 애장도서전’ 스물일곱 번째 명사로 조우성(67)인천시립박물관장을 초대했다. 조 관장은 시인이자 교사, 언론인, 향토사학자 등 수없이 많은 직함을 갖고 있는 인천의 어른 중 한 분으로, 향토사학자에 더 무게중심이 쏠리는 탓에 인천을 얘기할 때 그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정도다. 그가 말하는 책, 그리고 사람과 인생의 소중한 인연을 더듬어 보자.
# 한옹(汗翁) 신태범 박사를 추억하다
"책에서 ‘사람’을 봐야 한다." 조 관장이 책을 선택하는 일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다. 바로 ‘어떻게 책을 읽느냐’인데, 그 어떻게라는 물음의 답은 언제나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책을 고른 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사람’입니다. 사람을 통해서 얻는 인생의 지혜에 더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 관장은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그 중심에 서게 하는 애장도서로 스스로 인생의 큰 스승이자 아버지처럼 모셨던 한옹 신태범(1912~2001)박사의 「먹는 재미, 사는 재미」를 추천했다. 그는 신 박사의 이 책이 솔직한 인간의 고백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소개한다.
조 관장이 소개하는 신 박사는 인천 최초의 의학박사이자 지역에서 최초로 병원을 개업한 인물로, 우리에게는 「인천 한 세기」, 「미국사 연의」의 저자이자 대표적인 인천 향토사가로 알려져 있다. 신 박사는 언론인 출신으로 현재 인천개항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신용석(74)관장)의 선친이기도 하다.
"신 박사님께서 여든여덟 되시던 해에 제게 부탁 하나를 하셨습니다. ‘내가 죽는 날까지 매달 한 번씩 만나 줄 수 있겠나?’ 처음에는 너무 당황해 저도 횡설수설했습니다. ‘박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당연히 찾아 봬야죠.’ 그러니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말씀하시더군요. ‘이 사람아,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을 걸세’하며 빙그레 웃으셨죠."
그렇게 시작된 신 박사와 조 관장의 한 달마다의 조우는 중구 신포동 ‘난 다방’에서 이뤄졌고 사람과 책,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의 기쁨이 이야깃거리로 등장했다.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등장하는 먹을거리와 사람에 얽힌 재미난 일화는 늘 대화의 단골 소재로 쓰였다. 신 박사는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 인천의 음식과 거리 곳곳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먹는 재미, 사는 재미」는 미개척 분야인 식문화 탐구서로서 대부분의 음식 관련 책들이 재미로 맛집 찾기에 그쳤지만 신 박사는 우리네 식문화를 통해 우리 삶의 진실을 진솔하게 밝혀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달랐다. 신 박사와 조 관장이 자주 찾던 음식점도 있고, 몸에 가장 좋은 음식에 대한 나름의 평가도 곁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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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은 식문화도 연구하셨는데, 제철에 나는 제철음식이 가장 맛있다는 지론이 있으셨어요. 그 중에서도 제철에 나온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는 게 가장 큰 먹는 기쁨이라고 하셨죠."
「먹는 재미, 사는 재미」에는 맛 칼럼도 실렸는데, 육개장 맛이 일품인 ‘아리랑’이라는 집에 대한 소개와 냉면·생선·탕 등의 숨은 맛집을 소개하기도 했다. 중년 이후 집중한 식문화에 대한 탐구는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고, 음식의 맛뿐 아니라 음식을 통해 삶의 철학까지 담으려 했던 철학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늘 가까이에서 곁을 지켰던 조 관장은 신 박사가 세상을 떠난 후 남겨 준 이야기를 소홀히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고 한다.
"지금도 후회스러운 것은 매달 박사님을 봬면서도 그 흔한 녹음기로 선생님 말씀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미수(88세)의 연세에도 흐트러짐 없이 정확하게 짚어 주셨던 지난날의 역사와 오늘을 헤아려 보시는 말씀은 ‘지식의 보고’이자 ‘지혜의 단지’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문장력에서는 ‘무기교의 기교’라는 진수를 발휘하셨습니다. 어려운 것을 어렵게 말하는 것은 쉽지만 어려운 것을 쉽게 말하는 것은 어렵거든요. 그만큼 선생님은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인천에서 몇 안 되는 인문학의 대부라 칭송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신 박사는 향토사를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토대로 인문학적으로 풀어쓴 유일한 인물로, 인문학적 소양과 문학적 소양이 한데 어우러진 글을 썼다고 조 관장은 소개한다. 의학도인 신 박사는 일본 경성제국대를 나와 인천에서 최초의 의학박사로 개업한 뒤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죽산 조봉암 선생 등과 문학적 교우를 하기도 했다. 해방 후 둘은 일본 고단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을 섭렵하며 우정을 쌓았다는 게 조 관장의 귀띔이다.
# 청록파 시인 박목월, 그리고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
인천고 65회 졸업생인 조 관장은 한양대 국문학과를 나와 인천 광성고 교사로 재직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신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인으로 등단한 그가 산문집이나 신문 글을 쓰기는 여간 어려웠던 게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영감을 주고 글쓰기의 외연을 넓혀 준 분이 스승인 박목월 시인이다.
박목월 선생은 1946년 공동 시집 「청록집」을 낸 박두진, 조지훈 선생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자연미를 추구하고 국어를 순화해 생명의 원천에 대한 애정을 보여 줬고, 특히 일제강점기 빼앗긴 고향과 자연에 대해 노래하며 당시의 각박한 현실을 살던 이들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 한국 시문학계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다.
조 관장은 박목월 선생과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조 관장이 군 제대 후 4학년 졸업 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데 보기 좋게 낙방했다. 정월 초하루께 집에서 낙심해 있는 조 관장에게 박 선생이 근처 ‘동인천 다방’에서 보자는 전화를 했다. 박 선생은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뛰어 온 젊은 조 관장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춘문예에 작품을 냈으면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심사위원을 안 했을 거 아니냐. 이번 신춘문예에 나도 심사위원으로 들어갔다. 마지막까지 우성이 너 작품이랑 다른 작품이 올라갔는데, 내 어찌 널 가르친 스승으로 널 선택할 수 있겠나? 넌 내 수제자 아닌가.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그래이. 알겠나?"
조 관장은 자신을 아끼는 스승의 속 깊은 진심을 듣고 코끝이 찡해졌다. "선생님께서 나를 인정해 주시는구나."
조 관장은 기자 일을 하면서도 1년에 30편의 작품을 발표하는 열정 높은 시인이었다.
그런 조 관장에게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 또한 인생의 고마운 스승이다. 그는 새얼문화재단에서 발간한 「황해문화」의 창간 멤버로도 열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 인천을 사랑하는 그대, 그대들 모두 시인이다
조 관장은 현재의 자신이 있기까지 모든 공을 주위 사람에게 돌린다. 그만큼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인품이 넉넉한 사람이다.
"주위 분들이 알게 모르게 후원해 주시고 말씀해 주신 게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글을 쓰고 직책을 맡고 사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특히나 신 박사님 봰 것이 크고, 거꾸로 신 박사님을 통해 아드님인 신용석 선배를 만난 것도 그렇죠. 여기에 삶의 지평을 넓혀 주신 지용택 이사장님을 모실 수 있는 것도 제게 큰 복입니다. 모두가 제게 고마운 분들이시죠."
그런 조 관장이 자신의 인생길을 되짚으며 자신하는 최고의 찬사가 있다. 바로 지역을 사랑하는 인천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응원하는 한마디다. 인천이라는 곳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천시민에게 그가 건네는 한마디. 사람을 최고로 꼽고, 시인이란 직업을 그 사람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인천을 사랑하는 그대, 그대들 모두가 시인이어라∼."
#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 프로필
1948년 인천 출생
1975년 월간 시지 「심상」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 등단
2000년 인천시 시사편찬위원
2013년 계간 「리뷰 인천」 발행인
2014년 인천발전연구원 이사
2015년 선광문화재단 이사
2015년 현 인천시립박물관장
# 저서
「인천이야기 100장면」, 「20세기 인천문화생활연표」
시집 「소리를 테마로 한 세 편의 시」, 「아프리카」, 「코뿔소」등
# 수상
제17회 인천시문화상
제1회 인천사랑운동 대상
제1회 인천언론인대상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2015년 12월 21일 월요일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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