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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65회) 소설가 애장도서전(퍼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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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곳 : 기호일보(16. 1.25)
고전에 담긴 ‘삶의 성찰’ 오늘날 돌아보는 거울이 되다
31.이원규 소설가 - 톨스토이 부활
‘2015 세계 책의 수도 인천’ 지정을 기념해 기호일보사가 진행하는 ‘인천시민과 함께하는 애장도서전’ 서른한 번째 명사로 「부활(復活)」을 인생 지침서로 삼아 평생을 살아온 소설가 이원규(69)를 꼽았다.
그는 부활이 품고 있는 인간 생사의 철학을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도 모자라 후학을 가르치는 중요한 지침으로도 활용한다.
무엇보다 톨스토이가 세상에 알리고자 한 삶의 가치와 철학을 작품에 녹여 냈듯 자신도 톨스토이와 비슷한 황혼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의 인생 역정을 들어봤다.
# 톨스토이와 「부활」
부활은 톨스토이가 펴낸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에 이은 그의 인생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러시아 혁명기 이전 ‘제정러시아 사회의 거울’이라고 평가받을 만큼 당대 사회의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냈다.
귀족을 중심으로 한 상류층 사회의 부정과 부패, 하층민들의 억압적이고 고통스러운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비판의 목소리를 곁들이면서 현재까지 고전 명작이자 사상철학서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톨스토이는 세계 문학 최대의 리얼리즘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백작 가문의 4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와 사별하고 작은어머니 품에서 컸으며, 러시아와 영국·프랑스 연합군 전쟁인 ‘크림전쟁’에 참전하면서도 작품활동을 한 열정을 보였다.
1910년 향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러시아를 떠나 전 세계인들의 마음과 영혼을 사로잡는 수많은 작품을 남긴다.
# 청년 이원규, 「부활」에 눈 뜨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인천고등학교 1학년 때 독후감 숙제를 하다 톨스토이의 「부활」을 처음 만났다.
"담임선생님께서 독후감 검사를 하시는데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당신께서도 「부활」을 너무 아끼는데, 어린 제가 선뜻 그 책을 택한 것과 ‘인간의 가치’를 고민한 제 모습에서 깊은 감동을 받으셨다고요. 그때부터 제가 소설가에 대한 꿈을 키운 것 같습니다."
그는 「부활」을 세계 문학 10대 명저에 속하는 인간 존재의 근원을 고민하게 하는 명서로 평가했다. 특히 당시의 시대상을 톨스토이가 느끼는 철학과 세계관으로 엮어 내려간 것에 대해 갈채를 보냈다.
그런 이유에서 이원규 소설가의 인생은 「부활」과 톨스토이의 삶에 닿아 있었고, 영향을 받았다.
그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부활」이 전해준 인간애와 휴머니즘이 늘 그를 지켜줬다.
"총격전이 벌어져 적군이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와 함께 봤는데, 손가락에 금반지가 있더라고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아군이 손가락을 잘라 반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인간의 존엄이란 무엇인가?’, ‘네플류도프가 카츄샤를 다시 본 순간 느꼈을 부끄러움이 이 정도였을까’, ‘나는 왜 아군의 잔혹한 행동을 지켜만 봤을까’ 등을 생각하게 됐죠."
고뇌의 깊이는 훗날 그가 동국대 교수로 강단에 섰을 때 제자들에게 다시 전해진다.
「부활」의 문법이 오늘날 소설과 다르긴 하지만 대서사시의 전체 틀과 창의적인 캐릭터 창조, 주제를 향한 집중력, 인간 성찰의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는 확신에 늘 그의 강의 목록 첫 순위에 올랐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펴낸 다양한 평전에 톨스토이와 「부활」을 존경하고 사랑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 작품에 ‘톨스토이’와 「부활」을 녹여내다
그는 자신의 대표작 곳곳에 톨스토이와 「부활」에 대한 존경심을 투영했다.
그가 펴낸 항일투사 「김산 평전(실천문학사, 2007)」에는 김산(본명 장지락)이 독립운동을 벌이며 만난 인연들과 나눈 「부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영화는 하필 그가 무척이나 좋아해 이미 네 번이나 읽은 톨스토이의 「부활」이었다. 배심원들의 사소한 부주의로 카츄샤가 살인 혐의를 모두 뒤집어쓰고 형을 선고받는 것을 보면서 그는 펑펑 울었다. 그 위대한 작가의 글에 감화돼 밤 새워 소설을 읽은 그였다.’
그는 김산 평전에 다룬 이 같은 인용 문구를 직접 읊었다.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톨스토이와 「부활」을 향한 아낌없는 그만의 존경이기도 하다.
"톨스토이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자기 삶을 성찰하는 작품을 썼어요. 「부활」을 쓴 건 현재 제 나이 때죠. 요즘 작품을 쓰면서 당시 톨스토이처럼 제 삶을 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자기모순을 발견하며 반성할 때가 많죠. 톨스토이가 그랬듯 저 역시 책을 쓰며 양심과 깊은 인간애, 삶의 진실성, 주제를 향한 주저하지 않는 정직성, 사악한 것에 대한 폭로와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 톨스토이와 같은 삶을 살다
이원규 소설가는 인천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월남전에 전투병으로 참전한 뒤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 「겨울무지개」가 당선된 데 이어 1986년 「현대문학」 장편에 베트남전쟁을 다룬 자전적 소설 「훈장과 굴레」가 당선돼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초기에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순수 소설을 쓰다 「황해」를 발표하며 분단 문제로 관심을 돌린다.
이후 그는 사회주의와 사회주의자에 대한 맹목적 증오와 편견보다는 해방 공간에 활약한 사회주의자들을 재조명해 분단의식 극복에 기여하는 작품집에 몰두한다. 대표작이 독립운동가였으나 월북과 간첩 혐의 등의 이유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김산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실천문학사, 2005)」, 「죽산 조봉암 평전(한길사, 2013)」 등이다.
약산 김원봉은 지난해 영화화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암살’에서 배우 조승우가 열연해 다시 주목받았고, 죽산 조봉암 역시 간첩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최근 무혐의를 받아 사법살인의 희생양으로 알려진 인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다.
최근 그는 대한제국 마지막 무관생도의 희로애락을 담은 역사서 집필을 마무리한 상태다.
그가 남긴 최근작은 대부분 평전이 중심을 이루는데, 책 곳곳에는 「부활」에서 받은 치유의 정신, 용서하고 참회하는 정신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일그러진 오늘날 우리의 양극화를 회복하는 해법은 「부활」을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인간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드는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인천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사법살인으로 억울하게 세상을 등진 죽산 조봉암 선생이 떠오릅니다. 반공 이데올로기로 가득 찬 1950년대 해방정국으로 다시 시계추를 돌릴 수 없지만 「부활」이 품은 인간의 가치가 조금이라도 실현됐다면 어쩌면 그날의 악몽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 세대, 진보와 보수로 양분된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철학을 「부활」에서 찾을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의 평전을 쓰는 그에게 문단에서는 평전의 세계 최고봉인 슈테판 츠바이크를 빗대 한국의 슈테판 츠바이크로 지칭한다.
대담을 맺으며 그는 300만 인천시민과 교사, 학부모들에게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 중 그만의 비법 하나를 공개하기도 했다.
"인생의 사유와 통찰, 종교, 철학이 담긴 책을 읽으십시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고전 작품은 한 줄기 빛과도 같습니다. 스마트폰과 TV매체 등 영상문화 콘텐츠가 홍수를 이루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것은 인류의 최고 유산이자 명서는 ‘고전(古典)’이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 소설가 이원규 프로필
1947년 인천 출생. 인천고와 동국대 국문학과 졸업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겨울무지개」
1986년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 공모에 「훈장과 굴레」 당선, 등단
<저서>
-「침묵의 섬」, 「깊고 긴 골짜기」, 「천사의 날개」, 「펠리컨의 날개」, 「훈장과 굴레」, 「황해」
-「거룩한 전쟁 1∼3」,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1~9」
-「약산 김원봉」, 「김산 평전」, 「조봉암 평전」
<수상>
-대한민국문학상 소설부문 신인상
-박영준문학상
-동국문학상
대담=한동식 정치부장 dshan@kihoilbo.co.kr
정리=이재훈 기자 ljh@kihoilbo.co.kr
사진=최민규 기자 cmg@kihoilbo.co.kr
한동식 기자 dshan@kihoilbo.co.kr
2016년 01월 25일 월요일 제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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