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김창선(76회)의 [인천 섬 즐기기] / (9) 소청도(퍼온글)
본문
퍼온곳 : 인천in(25. 9.18)
원문
https://www.incheon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413
10억년의 바위 · 수려한 경관 · 일제 상흔의 섬, 소청도
[인천 섬 즐기기]
(9) 소청도
- 김창선 전 연합뉴스 기자
인천서 초쾌속선으로 3시간 20분... 멀고 먼 섬
국내 두 번째 등대 우뚝… 김대건 신부 동상·동백나무 군락
소청도 등대서 내려다 본 해안 절벽과 바다 전경
인천서 뱃길로 202㎞ 떨어져 있는 멀고도 먼 섬, 소청도(小靑島)!
인천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초쾌속선(시속 평균 70㎞)으로 3시간 20분 가량 질주해야 이른다.
대청도(12.6㎢, 1천200여명)와 가까이 있으면서 면적과 인구 등이 훨씬 적어 ‘소청도’(2.9㎢, 210여명)라 명명됐다.
인천 앞바다에는 이처럼 이웃해 있으면서 면적 등에서 차이가 나 형제 섬으로 불리는 섬이 2개 더 있다. 연평도-소연평도와 이작도- 소이작도다.
그 소청도가 한적한 어촌이면서도 둘러볼 것이 많아 뭍 사람들을 불러 들인다.
탑동선착장 삼거리의 이정표
국가지질공원이자 천연기념물(제508호)인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 화석과 분바위가 대표적이다.
국내 두 번째의 등대, 김대건 신부 동상, 동백나무 군락지, 국내 유일의 철새연구센터도 있다.
등대 가는 오솔길 모습
당연히 해안 절벽서 바라보는 바다의 풍광은 뛰어나다.
필자는 소청도 탑동선착장에서 등대를 먼저 둘러봤다. 선착장서 비탈길을 700m 가량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직진하면 예동마을이, 오른쪽으로 가면 노화동 마을과 등대가 각각 나타나다.
이곳서 2.7㎞ 떨어진 섬 서쪽 해안 절벽에 등대가 자리잡고 있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가면 된다. 도로 옆에 등산로가 있지만 여름철엔 수풀이 우거져 있어 걷기가 매우 힘들다.
도로 중간 지점에 정자가 나타나는데 이곳부터 등대까지 1㎞의 오솔길은 바다를 내려다 보며 걷기에 좋다.
등대는 흰색이고 육중하다.
등대 전경(옹진군청 홈페이지)
등대가는 도로 중간 지점 정자와 오솔길 안내판
1908년 1월 1일 국내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등대를 세우게 된 것은 소청도가 우리 서해안과 중국 산둥반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지리적 이점이 있어서다. 국내 첫 등대는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 등대(1903년)다.
지금도 가동되는 등대(높이 18m)는 2006년 등대전시관과 함께 신축돼 멀리 35㎞까지 비추고 있다. 옛 등대 자리에는 점박이 물범과 갈매기 형상의 기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전시관에는 섬과 등대 모형과 함께 등대 역사와 지명유래 등이 패널로 전시돼 있다. 캠핑이 가능해 밤에는 백팩커들의 불빛으로 낭만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서 선착장으로 도로를 따라 오다가 선착장삼거리 전 400여m 지점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예동마을과 동백나무 군락지 이정표가 나온다.
내리막길의 오솔길을 따라 동백나무 군락지를 둘러보노라면 고즈넉한 예동마을과 해변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백나무 군락지와 예동마을, 해변 전경
김대건 신부 동산 전경
이내 김대건 신부 동상을 만난다. 마을 뒷동산 중간 지점 양지바른 언덕의 흰색 동상은 따듯한 눈길로 마을을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최초 천주교 신부인 김 신부님은 외국인 선교사의 해상 입국 을 위해 소청도, 백령도와 중국을 수차례 오가며 한국과 중국사이 해로를 개척했다. 그러다 백령도에서 관헌에게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뒤 새남터에서 25세의 나이로 순교했다. 이후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 성인으로 추앙됐다.
이어 섬 동쪽 분바위 가는 해안도로 옆에는 해방된 뒤 얼마안된 1945년 10월 기뢰 폭발로 수십명이 숨진 주민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서 있다.
기뢰폭발 희생 주민 추모비(류재형 사진작가 제공)
1900년대 초 일본과 러시아의 서해 해전 당시(추정) 바다에 설치됐던 기뢰 3개가 마을로 밀려왔는데 하나는 자연 폭발됐다. 주민들은 나머지 2개 중 하나를 해체해 연료로 사용했고 남은 하나를 실수로 폭발시켜 주민 5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치는 대형 참사가 터졌다. 이후 2000년대 들어 희생당한 주민들의 넋을 기리고자 추모비를 세웠다.
섬의 최고 명소로 해변에 있는 분바위와 스트로마톨라이트 지대로 이동한다. 도로를 따라가면 되는데 중간에 야트막한 산 기슭의 오솔길을 이용하면 거리가 줄고 걷기가 한결 편하다.
분바위 전망대와 전시된 탱크 모습
분바위, 스트로마톨라이트 안내판
‘분바위’는 바위에 흰색의 분을 바른 것 같다하여 명명됐다. 밝은 달밤 바다에서 보면 마치 흰색 긴 띠가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것 같아 ‘월띠’라고도 한다. 뱃사람들은 월띠를 보고 섬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신원생대(10억∽6억년 전)에 생성된 석회암들이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구워지고 뭉쳐지며 흰색의 대리석으로 변했다.
이 대리석 층층에는 남조류나 남조박테리아들이 굳어진 줄무늬의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남아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박테리아 화석이자 국내 유일의 박테리아 화석으로 조사돼 지질학적 의의가 매우 크다.
이런 이유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고 2019년 6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주변 바위에는 홍합이 지천으로 서식하고 있다.
분바위는 색상이 아름답고 바위의 질도 우수해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무단 반출해 갔다. 지금도 바위를 캐낸 흔적이 남아있다.
천연기념물인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 모습
최고 명소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분바위 전경
분바위 주변 코브라바위와 폐목재 재활용 의자
분바위 가기 전 해변에 우뚝 솟은 황색의 바위는 최근 ‘코브라바위’라 불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 앞에는 마을 청년들이 폐목재를 재활용해 만든 의자가 있어 관광객들이 잠시 쉴 수 있다.
추모비와 분바위 중간 지점에는 철새를 연구하는 국가철새연구센터와 파란연구소가 각각 있다.
소청도를 포함한 서해5도는 철새의 국제 이동 경유지이고 특히 소청도 자연 생태가 수려해 정부는 2019년 4월부터 이곳에 센터를 세워 운영 중에 있다.
국가철새연구센터 전경
조류 유리 충돌 예방 위한 시험시설인 파란연구소 모습
조류충돌방지협회가 운영하는 파란연구소는 아시아 최초의 철새 보호 연구 시설로 새가 유리에 부딪치는 문제 개선을 위한 실험과 연구를 반복하고 있다. 한마디로 소청도는 철새의 보고이자 철새 연구의 산실인 셈이다.
빼어난 지질, 철새 경유지, 동백나무 군락지는 소청도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을 웅변한다.
추모비와 분바위 채석 현장은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과 식민 수탈의 상흔을 지금도 생생하게 보여주며 약소국의 비애와 함께 자강의 절실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경관이 수려한 섬, 제국주의 발호의 피해 현장! 소청도로 떠나보자.
인천~소청도 초쾌속선 코리아프라이드호
반나절에 걸어서 이들 명소 모두를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총 거리가 약 13㎞에 달한다. 인천서 출항한 첫 배가 오전 11시 30분 정도에 들어왔다가 오후 4시 10분경 두 번째 배가 인천으로 귀항해서다.
시간이 부족하면 등대 트레킹을 생략하고 예동 마을과 분바위만 둘러볼 수도 있다. 필자는 등대에서 분바위까지 5.5㎞ 구간만을 펜션 운영 주민의 차량을 이용해 여유있게 여행했다.
섬이 작아 대중교통은 없다. 차량이 필요하면 숙박업을 하는 주민들에게 부탁하면 된다.
섬의 관광 명소, 숙박, 교통, 식당 등은 옹진군 홈페이지 (www.ongjin.go.kr)를 보거나 군 관광문화과(032-899-2251) 또는 소청출장소(032-836-3301)로 문의하면 알 수 있다.
인천과 소청도 사이에는 고려고속훼리㈜(1577-2891, www.kefship. com)의 초쾌속선 코리아프라이드호와 코리아프린세스호 두 척이 각각 하루 1회 왕복 운항한다. 3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인천~소청도 초쾌속선 코리아프린세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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